산이 가마꼴 같아 성종 시대때부터 이곳은 부산(釜山)이라 불리게 되었다. 다른 지역의 산들은 암석과 절벽이 많아 사람이 살기 쉽지 않은데 부산은 마치 자식들을 위해 넉넉히 밥을 지으시던 어머님의 마음처럼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곳이다 보니 전쟁통에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곳은 오직 따뜻한 가마솥과 같은 이곳, 부산의 산이었다.
오늘날의 감천문화마을은 올라가 보면 그 어렵던 시절의 눈물을 반짝반짝 닦아 예쁘게 전시해두었다. 어떤 이들은 바다가 보이니 참 예쁘다, 야경이 멋지다고들 하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달빛에 기대어 쓰러질듯한 판자집을 부여잡고 생을 이어나가는 이름 모를 이들이 있었다.
변채호 시인의 '달동네'라는 시를 보면 길게 말하지 않아도 그간 세월을 얼마나 애틋하게 보냈는지 알 수 있다. 도자로 집은 물론 기쁨과 눈물 자국도 밀어낸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의 설렘을 느끼기 전에 아련했던 추억에 대한 애틋함을 느낄 수 있었다. 새로운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옛것을 밀어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추억은 쉽게 버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다시, 감천문화마을에서 씨앗호떡을 먹으며 굽이굽이 길을 따라 내려오면 아미동 비석마을을 만날 수 있다. 부산에 몇 남지 않은 달동네 중 하나인데 가로등 보다 밝은 달빛이 비치는 이곳을 천천히 살펴보면 이젠 떠난 이들이 많아 고요한 달동네이다. 그때, 꺼져있는 줄 알았던 동네의 생기는 해가 지고서야 하나둘 피어오른다. 저녁시간에 맞춰 피어오르는 된장찌개향, 홀로 골목을 지키고 있는 위풍당당한 어린아이의 장난감, 언제나 처럼 이 오르막을 거뜬히 오르는 힘찬 초록색 마을버스를 보면 지금도 산에 마음을 묻고 사는 사람들의 삶을 느낄 수 있다.
이제 사람들은 달이 아닌 도시의 불빛에 의지하며 살아간다. 한 번도 고되지 않은 삶을 산 것 처럼, 하지만 저 달은 안다. 그대의 젊은 시절은 누구보다 치열하고 아름다웠다는 것을.
서원덕/회사원/87년생/01053858515/wondeok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