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시인 초량 차이나타운을 읽고
어릴적, 막내 할아버지를 뵈러 방학마다 부산에 갔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부산이 ktx로 3시간이면 가는 짧은 거리이지만, 어릴적 내게는 부산으로 가는 기차가 대륙을 건너는 횡단열차처럼 느껴졌다. 차창을 빗겨가는 바깥 풍경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가 아주 먼 곳으로 나아가고 있구나라는 막연한 기분이 들었다. 부산으로 가는 길, 그 옛날 자신이 살던 조국을 떠나 초량동으로 오던 화교들도 이런 막연한 감정을 느꼈을까. 은유 시인 김영찬 작가의 시, 초량 차이나타운을 읽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다.
이른아침 서울역에서 출발하면 점심즈음 부산역에 도착했다. 엄마는 도시락통에 삶은계란이나 주먹밥같은 걸 싸와 내게 먹으라고 했지만 나는 좋아하던 사이다도 마다하고 공복상태를 고집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를 만나 짜장면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내가 밀가루음식을 먹으면 두드러기가 난다고 짜장면을 못 먹게했지만, 할아버지는 내가 좋아하는 짜장면을 마음껏 사주는 사람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차이나타운에서 파는 불고기짜장면을 제일 좋아했다.
불고기 짜장면은 다른 곳에선 먹을 수 없는 음식으로 한국 양념불고기에 중국식 짜장면을 합친 음식이었다. 익숙한 한국어와 귓전을 울리는 카랑카랑한 이국의 언어가 섞여들리는 이곳. 이곳 차이나타운에서 불고기 짜장은 이미 인터넷에서 지역 별미로 자리잡았다. 누가 어디서 대체 무슨 이유로 불고기짜장 같은 음식을 만들었는지는 알려진 것이 없고, 사실 말이 좋아 불고기짜장면이지, 그저 국적불명의 음식에 불구하지만 그래도 불고기짜장면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식당은 진한 춘장 냄새로 가득 차 있고, 웍으로 볶아낸 불고기에서는 불맛이 났다.
그러고보니 차이나타운과 불고기짜장면은 어딘가 닮아있었다. 한국과 중국의 문화가 만나 만들어진 차이나타운. 그리고 한국의 불고기와 중국의 짜장면이 만나 만들어진 불고기짜장면. 생각해보면 애초에 짜장면이라는 음식의 탄생 자체가 고국을 그리워한 화교들이 만든 음식이었다. 위로 휘어진 멋드러진 청기와와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용이 세겨진 차이나타운 입구. 이탈리아에 있는 교황령 바티칸도시처럼 부산에 있는 작은 나라 차이나타운은 오랜 역사와 수많은 문화를 품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차이나타운 입구로 들어가면 정말 새로운 세계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사준 불고기짜장면은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은유 시인 김영찬 작가의 초량 차이나타운을 읽으니 어릴적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또한 시구에서 활기넘치는 차이나타운 특유의 분위기가 잘 드러나서 좋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화교들의 애환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 소리로 파도가 일렁이고 처음 맡아보는 향신료 냄새와, 사방에서 들려오는 이국의 언어가 모이는 초량 차이나타운. 이곳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신비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고보니 벌써 올해가 한중 문화수교 31주년이라던데. 지금도 그때 그 불고기짜장면 집이 있으려나 궁금해졌다. 문화축제가 열리는 10월엔 오랜만에 막내할아버지를 뵈러 부산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