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자
불공평한 세상이라고들 하지만,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은 참으로 공평한 것 중의 하나이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누구나 태어나면 언젠가는 다른 세상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일을 시작하면 언젠가는 적정한 나이라는 시간에 이르게 되어 퇴직이라는 관문을 거치게 되어 있다. 누구나 어느 지점에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한다. 물론 모든 직업이 퇴직제도가 있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퇴직이라는 말이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정년 없이 인생을 사는 분도, 퇴직보다 이직을 많이 하다 보면 퇴직이 여러 번 찾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퇴직은 마지막 관문인 동시에 또 다른 통로이고 새 출발선일 수도 있지 않을까?
퇴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나로서도 이 글이 주는 한마디 한마디가 곱씹어지고 나의 일처럼 느껴져 흥미가 느껴졌다. 아직 장밋빛 미래설계를 하지 않은 입장이라 요즘 들어 생각해 보면 되 내어 보는 말들이 많아지긴 해졌다. 돈을 더 벌어야 하나? 무엇을 먼저 시작할까? 실컷 놀아볼까? 어떻게 여생을 보낼까? 이 나이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다.
얼마 전 실버타운에 입주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유튜브에서 보았다. 한 할머니께선 교직을 그만두고 실버타운에 입주하신 지 30년이 되셨다 한다. 건강한 90세가 되어 있었다. 규칙적인 생활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꾸며 놓아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이 참 좋았다. 하지만, 할머니의 한 마디가 참 많은 시사점을 주었다. ‘이렇게 30년을 더 살 것 같았으면 무엇인가 내가 하지 못했던 일을 시작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이제부터라도 해야겠어요.’ 할머니께선 아마 퇴직하신 그 즈음, 30년 전엔 새로운 무엇을 시작하시기에는 너무 늦다라고 생각하셨다 한다. ‘이렇게 오래 살 줄 알았더라면 내 것을 만들고 무언가 못했던 것을 하며 삶을 살 걸 그랬다.’라고. 하지만, 건강을 얻으셨으니 잘 살아오신 듯했다. 할머니께서는 당장 새로운 어학도 배우고, 그림도 배우고 싶다고 하셨다. 정말 아직도 마음과 몸이 건강하시다란 생각이 들었다. 꼭 시작해 보시길 두 손 모아 응원합니다.
류재신 작가가 언급한 노래 가사에도 있지만, 내가 요즘 푹 빠져있는 노래는 김용임 가수의 ‘나이야 가라’이다. ‘마음엔 나이가 없는 거란 걸 세월도 빗겨가는 걸 잊지는 말아요 오늘 이 순간이 내 인생에 가장 젊은 날, 청춘엔 기준이 없는 거란 걸 지금도 한창때란 걸 잊지는 말아요 오늘 이 순간이 내 인생에 가장 젊은 날’. 나이가 들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가슴에 콱콱 박혀들며 실감이 든다. 자꾸 크게 노래부르고 싶어진다. 몇 번을 반복하며 듣고 따라불러도 지겹지가 않다. 마음은 아직도 학창 시절에 머물러 낙엽이 지면 낙엽을 주워 책갈피로 만들고 싶고, 참새가 포르르 날아가는 것만 보아도 신기하고 예뻐보이는 마음은 언제나 청춘임을 더욱 실감케 해준다.
평균 나이 100세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이다. 가사 일에 많은 노동이 필요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고 누구나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영양이 담긴 음식을 섭취하고 적당한 걷기 운동을 하다 보니 누구나 공평한 건강한 나이로 늙어가는구나 싶다. 퇴직의 나이가 되면 누구나 젊을 때보다 느리게 반응하고 느리게 이해되지만, 무엇보다 좋은 점은 젊은 시절에 못한 일, 젊은 시절 안해 본 일을 다시 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점이다. 작년 9월부터 시작한 일어, 5년 전부터 시작한 영어, 빼놓지 않고 하는 명상, 책읽기를 통해 많은 새로움의 영역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처음엔 학창 시절만큼 머리에 기억이 남지는 않았다. 이 나이엔 많은 것들이 머리에 들어 있다 보니 외우기는 느리지만 한 문장, 한 단어가 새롭게 다가온다. 생소한 단어가 주는 새로움은 또 다른 생활의 탐구심을 더해 주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이니, 나머진 천천히,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의 노력으로 모든 걸 채우면 된다. 많은 욕심을 부릴 필요는 없다.
얼마 전 시골에 작은 집을 짓고 사시는 지인을 방문한 적이 있다. 두 부부는 3년 전 함께 정년퇴직하시고 작은 텃밭에 꽃과 과일나무, 배추, 무, 파, 상추 등을 심어 놓고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생활하고 계신다. 한적한 삶에 만족스럽다고 하셨다. 텃밭을 가꾸는 삶이 바쁘면서도 자연의 꽃을 보고 새 소리를 듣는 삶이 행복하다고 하셨다. 마음의 여유와 묶이지 않는 마음이 좋고 음악을 듣고 때때로 친구들이 놀러 와 떠들썩한 이때도 참 좋다고 하셨다. 여유로움과 한적한 삶, 욕심없는 삶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니 젊은 시절과 차이를 대라면 역시 나만의 시간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자식들이 각자 독립하고 남편도 스스로 챙기다 보니 나 스스로 혼자되기, 스스로 입 닫기, 눈치 보지 않기, 비교하지 않기, 만족하기 등 혼자라서 좋은 점이 너무나 많아졌다. 예전에는 함께여서 느껴보지 못한 것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함께 속에도 외로움이 있었고, 눈치는 안 볼 수가 없었고 비교당하고 비교하며 만족하지 못한 생활이 많았기 때문에 혼자가 더 좋고 마음이 몸이 편하다는 생각이 더 드는지도 모른다.
새출발이 거창할 필요는 없다. 그냥 출발하면 된다. 어제와 다른 무언가를 시작하고 오늘 그걸 다시 익히면 되지 않을까? 힘들면 쉬어도 되고 생각나면 또 펼치면 되니 지금이라는 인생의 색다른 시간이 얼마나 좋은가? 조금씩 퇴직의 연습을 시작해야겠다. 다시 새출발에 설 삶의 시간을 위해 오늘도 조용히 걸어보고 한 줄의 책을 읽어보고 감사의 글쓰기를 하는 시간을 가져 본다.
박영희
1965
010-5578-2353
hi949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