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문학협회] 주최 제1차 [독후감상문공모전]
당선작 발표
[우수상]
(대학일반부) 이정인,‘피랑에 서서 읽다-강신구 작가의 <서피랑>’
(대학일반부) 김지수,‘황갑윤 작가의 <거울 앞에 서서>를 읽고’
[장려상]
(초등부) 오유성,‘김영찬 작가의 <부산백경>을 읽고’
(초등부) 이혜원,‘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주셔서, 김선일 <구월이 아름다운 것은> 읽고’
(중고등부) 이혜윤,‘그대 꽃인 것을 부디 잊지 마세요. 안명희 작가의 <꽃>을 읽고’
(중고등부) 최유진,‘나의 바다로, 김순옥 작가의 <해양을 넘어 대양을 돌아서>’
(대학일반부) 김예은,‘시조 <수강사(제25경)>를 읽고’
(대학일반부) 이창희,‘송수이 작가의 <마중>을 읽고’
[입상]
(중고등부) 남희나, 김영찬 작가님의 시조 영도등대를 읽고
(중고등부) 문시우, 은유시인 초량 차이나타운을 읽고
(대학일반부) 김길문, 류재신 님의 ''지금부터 새출발이다'를 읽고
(대학일반부) 이진목, 김영산 작가의 그랜드 투어를 읽고
(대학일반부) 박영희, 류재신 작가의 지금부터 새출발이다를 읽고
<우수상>
[대학일반부]
황갑윤 작가의 <거울 앞에 서서>를 읽고
- 김 지 수
"지난 수십 년 동안 과연 나는 무엇을 했던가?"라는 작가의 질문에 난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날이었다. 아빠는 도박, 주식 중독으로 전 재산을 날렸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피해 날 데리고 새로운 곳으로 도망을 왔다. 엄마는 일을 시작했고 난 새로운 가정에 맡겨졌다. 사랑이 가득한 집이었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중학생 때에는 베체트병 판정을 받았었고 입원을 자주 했었다. 그럼에도 의사라는 꿈이 있었기에 공부는 놓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였다. 처음 장출혈이 났었고 수능이 얼마 안 남은 날까지 입원을 하며 병원에서 살아야 했다. 그때 그동안 못 놓고 있었던 공부를 놓았고 난 의사의 꿈을 포기했다. 성적에 맞춰간 대학에선 잘 적응하지 못했고 따돌림을 당했었다. 난 버티지 못했고 자퇴를 했다. 충격이 컸었고 처음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우울증, 불안 장애, 공황장애 약을 처방받았다. 쉴 곳이 필요했다. 난 모든 것을 정리한 후 엄마가 있는 본가로 갔고 몸이 회복된 후 스물한 살에 전문대에 입학했다. 가면을 쓰고 억지로 밝은 척을 했었고 그 덕에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소외된 친구를 챙긴다는 이유로 그 친구와 함께 과 안에서 따돌림을 당했었다. 그래도 그 친구만을 믿고 버텼고 졸업을 했다. 여전히 난 아팠다. 졸업 후엔 스스로 세상과 벽을 친 채 방 안에서만 지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대학교에 다시 가야겠다'라고 다짐했다. 가장 좋아하던 과목인 음악을 제대로 배우고 싶었고 무엇보다 많은 친구들과 제대로 된 대학 생활을 해 보고 싶었다. 합격을 했지만 입학식 날을 얼마 안 남은 시점에 코로나가 시작됐다. 1학기 내내 거의 비대면 수업을 했고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실기 과목인데 실기를 못 배우니 학교를 그만뒀다. 그리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있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은 뭘까? 뭘 할 때 가장 행복할까? 책을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했던 아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들을 읽으며 '나도 소설을 쓰고 싶다.' 생각했다. 나의 세 번째 꿈이었다. 글 쓰는 것을 배운 적은 없지만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써갔다. 그렇게 투고를 했고 몇 달 전 공모전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스물일곱에 드디어 원하던 꿈을 이뤘다.
‘작가는 이제부터는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기로 하자’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기쁨 ⸱ 노여움 ⸱ 슬픔 ⸱ 즐거움 ⸱ 희로애락 등을 마주하게 될 것이지만 어떤 모습이든 ‘똑바로 마주하기’이다.
또한 그렇다, ‘아직도 나는 내 거울 속에서 나를 온전히 찾지 못했다.’
‘좀 더 생각하고 날마다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처음 이 글의 제목, 글을 읽었을 때 ‘나의 외모, 외적인 부분을 수용하고 거울 앞에 당당히 서서’라는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공황 장애가 심했을 무렵, 스스로 세상과 벽을 친 채 방 안에서만 지낸 몇 년의 시간 동안 살이 많이 쪘다. 그럼에도 옛날의 나의 인연들이 내가 날씬했을 때의 모습만을 기억해주길 원했고 고향에 갈 때면 모자를 푹 눌러 쓴채 그 사람들을 피해 다니기 바빴다. 물론 거울 속의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유일하게 매일 보는 엄마는 살찐 나에게 괴물이라고 칭했고 나도 나를 그렇게 봤다. 집에서는 옷을 못 벗었고 밖에서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녔다. 그렇게 살다 살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없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인가를’, ‘더 늦기 전에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시작해보자.’ 그렇게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똑바로 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처음엔 너무 힘들었다. '괴물 같다'라는 생각이 가득했고 울퉁불퉁 튀어나온 살이 보기 힘들었다. 그러다 점차 익숙해져 갔다. 생전 안 찍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날의 나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교회도 가기 시작했다. 예배가 끝나면 청년부원들끼리 모임을 가졌고 그렇게 하루하루 행복했다.
그리고 성숙은 외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내적인 부분 또한 성숙해져 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하루하루 많이 생각하고 성찰했다. 의사, 음악인의 꿈을 포기했지만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은 뭘까?', '뭘 할 때 가장 행복할까?' 그렇게 작가라는 꿈을 다시 가졌고 도전했고 성공했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이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는 시간의 분량만큼 다가오는 내일도 후회 없는 환한 길이 되리라 생각해 본다.’
과거 회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앞으로 잘 살아가기.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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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대학일반부]
피랑에 서서 읽다 – 강신구 작가의 <서피랑>
- 이 정 인
통영 적십자사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여든이 다 되어가는 할머니는 동네 굴까기의 달인으로 새벽부터 나가 앉은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굴을 까서 달에 오백을 넘게 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손가락이 굽어진 채로 아프다. 아프다 소리를 달고 살면서도 굴까기를 접지 못하는 것을 보면 가히 그 소문이 맞다 싶더라. 할머니는 매일같이 독한 진통제나 관절염 약을 타 드셨다. 약 먹을 때는 잠깐 손가락 마디마디 뚫고 들어오는 통증을 좀 잊으신다 했다. 그렇게 할머니들을 여럿 보내고 나면 적십자 병원 뒤편을 돌아나가 서피랑에 올랐다. 늦은 오후의 햇살에 눈이 자꾸 감기는데 서피랑에 올라서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동피랑 벽화마을이 워낙 유명하여 그쪽은 들고 나는 차 때문에 입구에서부터 교통체증이 장난 아니다. 중앙시장을 접해 있어서 더욱 그럴 것이다. 이곳과는 다른 서피랑은 언제나 고즈넉했다. 관광객이 있어도 동피랑처럼 담벼락마다 사진들을 찍고 있는 게 아니라서 더욱 조용했던 것 같다. 식후 좋아하던 산책 장소가 수필의 소재로 등장하니 제목부터 반가웠다. 통영에서의 시절이 짠 바람 냄새와 함께 훅 밀려 왔다.
피랑은 벼랑이라는 뜻의 사투리이다. 피랑을 중심으로 서민들의 삶의 애환이 묻어나는 달동네가 생겼다. 철거 이야기까지 나왔다가 관광 상품으로서의 면모가 부각되면서 오히려 피랑을 가꾸고 홍보하게 되었다. 그래선지 각 피랑들에는 동네마다 개성이 있고 그 개성을 즐기는 맛이 있다. 피랑을 대표하는 맛집이 있기 마련인데 아무래도 사람들이 득시글득시글 하는 동피랑 주변에는 젊은 청년들이 새로운 가게를 내거나 아이디어 상품이나 재미있는 주전부리를 파는 경우가 많다. 물고기 잡아 팔고, 말려 팔고 하던 동네에서 빨강머리 앤이 그려진 손거울을 파는 상점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통영이 아니라 서울 연남동 핫플레이스에 들어서 있는 느낌을 받곤 했다. 서피랑은 조금 다르다. 새로운 가게라고 해봤자 작고 깔끔한 커피숍이 한두 개 들어선 거 외에는 조용한 편인데, 피랑을 올라가기 전 건너편 도로에 아주 오래된 할머니 떡볶이집 하나가 그나마 제일 유명한 맛집이다. 떡볶이도 일품이지만 떡볶이 국물에 흥건히 적셔먹는 닭튀김이 별미이다. 바로 튀겨서 내주신 순살 닭튀김을 국물에 푸욱 찍어먹으면 바삭, 달달한 풍미가 입안에 가득 찬다. 순대 인심도 넉넉해서 한 사람 분 시켜도 양이 제법 많아 분식이 아니라 배 뚜드리고 나오는 식사가 되곤 했다.
강신구의 ‘서피랑’은 통영의 아기자기한 예쁜 모습들을 담고 있다. 하지만 부산에서 오랜만에 가을 문학 나들이를 나선 길에 비는 추적추적 오고, 단체 버스는 해운대에서 출발하는 바람에 부산 끝에서 끝까지 넘어와 순탄치는 않은 길이었다. 팬데믹으로 오래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의 소식을 직접 듣고, 그동안 누가 아팠다? 고생했다 손잡고 마주할 수 있는 귀한 자리에 아름다운 통영이 거들었다. 강신구가 들려주는 통영의 뒷이야기에는 토지를 쓴 박경리의 일화도 있고, 삼도수군통제영 충무 이순신의 싸움도 있다. 그곳에 토막을 쓴 유치진 작가가, 시조를 쓴 김상옥도 살고 있다. 전혁림 작가의 그림이 바다를 내려다보고, 윤이상 작곡의 노래가 밤바다에 울려퍼지는 그 곳, 문화가 살아 숨 쉬는 통영.
나는 통영을 떠나온 지 벌써 5년이 흘렀지만, 강신구의 여행길에 함께 따라 나서보니 바로 엊그제 다녀온 듯 생생함이 느껴졌다. 눈을 감고 가만가만 더듬어 보니 양지바른 따뜻한 박경리 작가의 묘지에 다녀왔던 발자국소리가 봄이면 벚꽃이 만개해 아름다운 길을 이뤘던 봉숫골 입구에서 막걸리를 따르는 소리가, 중앙시장 졸복 지리의 맑은 국물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온다. 강신구 작가와 함께 통영 여행은 뭐 하나 입에 대지 않아도 마음이 그득그득 차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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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려상>
[초등부]
김영찬 작가의 <부산백경>을 읽고
- 오 유 성
멀리 보이는 숲들의 모양은 다 똑같아 보이지만, 숲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모든 숲길은 각각 다르답니다. 어느 숲이든 나무와 들꽃, 오솔길과 옹달샘, 작은 새와 다람쥐 등등 비슷한 것들로 만들어졌지만, 숲길에서 만나는 색깔과 향기, 소리와 바람은 같을 수가 없어요.
우리 마음속에 담고 있는 기억의 조각들도 서로 비슷할 거예요. 누구나 엄마 아빠와 함께 떠난 가을 여행의 풍경을 기억하고 있지만, 그 기억의 색깔과 향기가 모두 다른 것처럼요.
기억에 고운 색을 칠하고 맑은 향이 스미면 추억이 됩니다. 그래서 여행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웃음소리가 들리고 군침도 도는 게 아닐까요.
숲길을 걸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숲길에 들어서면 “아, 기분 좋다.”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고, 같은 숲길도 갈 때마다 새롭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좋은 숲에 잘 안 가게 되어요. 집 뒤편 아담한 동산에서 아침마다 맑은 향기가 불어오고 새소리가 들려오는데도 말이죠. 추억도 그래요. 책장에 꽂혀있는 앨범은 언제든 손만 뻗으면 꺼낼 수 있고, 핸드폰에도 행복한 사진이 가득하지만 잘 안 열어보게 됩니다.
추억을 마음에 걸면 행복합니다.
부산 100경에서 그리고 있는 부산 풍경을 읽고 나서는, 새삼스레 뒷동산 숲길을 거닐고 부산 여행 사진도 뒤적였습니다.
“사계절 삼삼오오 풍류객 들락날락/ 두둥실 가파른 골 오가는 케이블카/ 산정상 탁트인 경관 구름아래 신비경” (부산100경 ‘금강공원’ 중에서)
그때 그 겨울 해운대 바다에서 갈매기를 쫓고 있는 뒷모습에는 함빡 웃고 있는 내 어릴 적 얼굴이 찍혀 있고, 자갈치 시장에서 ‘호호’ 불어가며 먹고 있는 어묵에서는 고소한 맛과 향이 풍겨 나죠.
오늘은 지난 우리 가족의 추억 100경을 만나고, 새로 만들고 싶은 추억 100경에 퐁당 빠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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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려상>
[초등부]
고맙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주셔서......
- 김선일의 <구월이 아름다운 것은>을 읽고.
- 울산옥동초등학교 5학년 이혜원
나는 가을이 제일 좋다. 바람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고 적당해서 시원한 그 느낌에 걷지 않고 뛰는 게 기분이 더 좋다. 머리를 꼭 묶지 않아도 땀이 나지 않고 아스팔트 아지랑이에 머리가 어지럽지도 않다. 딱 좋다!
게다가 나들이는 가을이 최고다. 봄은 변덕이 심해서 얇게 입고 나갔다가 추워서 된통 당한 적도 있지만, 가을은 사각거리는 내 베이지색 바람막이를 입고 나가면 햇살이 따가우면 벗고 그늘에 추우면 입는다. 울산 태화강역을 따라 내려오면 내 키보다도 큰 억새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킥보드를 들고 태화강 국가정원에 가면 노란 국화가 안녕, 인사한다. 사슴농장에서 간월재에 올라가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라면을 먹으면서 드넓게 펼쳐진 억새 평원을 볼 수 있다. 가을의 주말은 짧지만 그래서 매주 더욱 기대가 된다.
김선일 작가님의 <구월이 아름다운 것은>을 읽고 깜짝 놀랐다. 가을을 나처럼 좋아하는 사람이 또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가님은 내가 꼽은 이유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유들을 찾아내셨다. 이제 가을이 좋은 이유를 나는 더 멋지게 말할 수 있다. 날씨가 좋아서, 나들이 가기 좋아서, 가을이 좋기도 하지만 작가님의 말처럼 ‘대지가 황금 너울 털고’, ‘새하얀 구름이 뭉쳤다 헤어져’ 만나야 할 사람을 꿈꾸게 만드는 가을이어서 더 좋다. 내가 아는 세상이 더 아름다워졌다. 김선일 작가의 말로 가을이 더 멋진 옷을 갈아입은 듯하다.
가을은 풍요와 꿈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추억과 그리움의 날이기도 하다. 김선일 작가는 ‘오래전 헤어졌던 친구가 고향 그리워’ 옛 시절을 회상할 가을이라고 표현했다. 가을의 여유가 지난날을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여름과 겨울은 너무 치열한 계절이라 여유가 없다. 뜨거움에 맞서고, 추위를 견디다 보면 고향에서의 즐거웠던 어릴 때를 떠올릴 여유는 없다. 하지만 가을의 깨끗한 밤하늘 위에 둥그렇게 뜬 보름달은 한없이 사람을 생각하게 한다. 달 속의 토끼 이야기처럼 아주 오래된 설화부터 달 밝은 날 친구와 늦게까지 놀았던 기억까지 가을은 사진첩을 펼쳐보듯 추억을 펼쳐보게 한다. 그 추억의 사진첩에는 젊은 시절의 엄마와 아빠, 옹알이를 하던 아기 시절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선일 작가는 이를 ‘풍요와 포근함에 옛 소식 버무러지고 함께 동화되는’ 계절이라고 했다. 단어 하나하나 가을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 없다.
작가님의 가을을 듣고 있으니, 나도 가을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우리 할머니는 함양에서 사과 농사를 지으신다. 가을에 놀러 가면 과수원에 열린 사과가 정말 내 얼굴만 하다. 빨갛게 익은 커다란 사과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나무 사이를 지나가면 향긋한 사과 냄새에 입에 침이 고일 정도다. 어떻게 이렇게 사과가 크냐고 물으면 할머니는 웃으면서 엄마, 아빠가 나를 키운 것처럼 영양분 주고, 물 주고, 좋은 햇빛 쐬어 크게크게 키운 거라며 너도 얼른얼른 크라고 하신다. 일 년 내 허리 펼 새 없이 새벽부터 과수원에 가 있는 할머니의 결실은 가을을 맺는다. 가을을 제일 좋아하는 건 아마 우리 할머니가 으뜸일 거다. 할머니에게 가을은 사과의 주렁주렁 열리는 풍요의 계절이다.
김선일 작가의 시를 보고 또 보고, 그러는 사이 가을이 깊어졌다. 가을이 깊어감에 따라 가을의 아름다움도 깊어진다. 가을의 아름다움을 일깨워 준 작가님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고맙습니다. 작가님 덕분에 세상이 더 아름다워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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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려상>
[중고등부]
그대, 꽃인 것을 부디 잊지 마세요.
- 안명희 작가의 <꽃>을 읽고
- 울산서여자중학교 1학년 이 혜 윤
‘엄마, 건드리지마~’
요즘 우리 아빠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이다. 엄마한테 학원에 가져가야 할 문제집을 말해놨는데 이번 주까지 와야 하는 문제집이 아직 어디 물류센터에 있단다. 그냥 학원 옆 서점에서 사도 되는데 굳이 인터넷으로 샀냐고 한마디 하려는데! 엄마 건드리지마~ 아빠 눈에서 레이저 뿜뿜이다.
그제 아침에는 베이글에 과일을 곁들여 먹고 싶어서 전날 저녁에 당부해놨는데 미역국에 밥을 말아 놓으셨다. 지난번엔 미역국이 짜더니 아침 미역국은 아무 맛이 안 난다. 그냥 그렇다고 말을 했는데 엄마가 그러면 먹지 말라고 하고는 그릇을 엄청 세게 개수대에 담군다. 이크, 그릇 깨질 것 같다.
요즘 저녁만 되면 찬 바람에 공기가 엄청 쌀쌀한데 엄마는 거실 창문, 안방 문을 활짝, 활짝 열어 놓는다. 엄마는 덥단다. 인견 반바지에 반 팔을 입고 있는 엄마는 얼굴이 발그레하다.
아빠는 결국 엄마를 건드리면 안 되는 비밀을 이야기해주셨다. 요즘 엄마가 갱년기란다. 영유아기, 사춘기도 아닌, 이름도 생소한 갱년기라고 한다. 처음엔 그게 뭐야, 싶었는데 엄마도 잠도 잘 못 주무시고 뒤척이는 걸 보니 슬슬 걱정이 된다. 그러던 중 엄마 책장에서 안명희의 ‘꽃’을 만났다.
그대
시든 꽃이라고 슬퍼하지 마세요
한때는 곱고 눈부시어
모두가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젊은 날이 있었지요
그대
열매 없는 꽃이라도 기죽지 마세요
한때는 이곳저곳 씨를 날리며
수많은 꽃을 피운 시절이 있었지요
그대
빛이 없는 꽃이라고 낙심하지 마세요
저녁노을에 비친 엷은 피부는
가끔씩 살구 빛을 발하고
산뜻한 미소에 수고하고 지친 나그네
힘을 얻을테니까요
그대
아직도 꽃인 것을 부디 잊지 마세요
그대를 엄마라고 바꿔 불러보면 이 시는 우리 엄마에게 들려주기 딱 좋은 시다. 엄마는 지금 자신이 아름다운 꽃인 것을 잠시 잊고 있다. 곱고 눈부시어 모두가 바라보는 꽃은 아닐지언정 엄마는 우리 집의 웃음꽃이다. 우리 집을 지켜주는 수호 꽃이다. 엄마가 아침에 깨워주지 않으면 학교에 갈 수 없다. ‘5분만 더’는 내 기본 장착템이지만 그 5분을 뒹굴거리면서 일어나면 아침이 차려져 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차려진 아침밥을 다섯 숟갈 정도를 뜨면 적당히 배가 부르고 물을 마시고 양치질을 하고 나면 딱 학교에 나설 데드라인이다. 엄마는 퇴근하면서 학교에 들러 나를 학원에 데려다준다. 학교랑 학원은 거리가 있어서 엄마가 데려다주지 않으면 버스를 타야 한다. 버스를 타는 거나 엄마가 태워주는 거나 시간은 비슷하지만 엄마 차를 타면 엄마가 챙겨온 맛있는 간식을 먹을 수 있다. 엄마 친구분이 주셨거나 점심을 먹고 나온 후식을 안 먹고 가져오시거나 부서에서 다 같이 간식을 나눠 먹는데 나를 위해 한두 개 남겨 오는 식이다. 차 안에서의 이 한 입의 간식타임이 나는 너무 행복하다. 학원이 끝나면 저녁 8시다. 단어 테스트에 통과되지 못하고 더 남아서 나머지 공부를 해야 한다. 종종 9시에 끝난다. 그때에도 엄마가 데리러 온다. 나의 하루는 온통 엄마가 출현한다. 나에게 엄마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는 괴로운 마음으로 엄마는 항시 열이 나고 땀이 차는 게 아닐까.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 가족의 꽃인데 엄마는 시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이미 20대 치열하고 공부하고 30대 돈을 벌면서 우리를 키웠는데, ‘이젠 뭘 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고 하셨다. 나는 엄마가 이미 어릴 때 공부를 열심히 하고 직장을 얻고 우리를 낳고 키운 그 수많은 열매들을 이제는 그냥 자랑스러워해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또 엄마가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으시다면 그 길이 무엇이든 열심히 응원할 것이다. 엄마가 우리를 언제나 응원해주었듯이 말이다.
엄마는 수수하고 담백한 꽃이다. 어디에서나 피고 자주 볼 수 있는 들꽃이지만 보고 있노라면 그 어느 꽃보다도 마음의 위안이 되는 고요하고 깨끗한 꽃이다. 여린 꽃대에 큰마음이 얹어져 노랗고 얇은 꽃잎이 서른너덧 쪼르르 달려 동그랗고 보드란 동그라미를 만들어 낸다. 보면 볼수록 예쁘고 정감 가는 꽃이다. 장미는 강렬한 색으로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지만 아름다움에 끌려 손을 댔다간 가시에 찔리고 만다. 민들레에게는 찔리지 않는다. 노란 꽃도 있지만 흰 꽃도 있고, 모양은 들여다보면 꽃잎에 따라 각양각색, 질리지 않는다. 꽃씨는 가벼워 멀리멀리 날아가 척박한 땅이나 진흙 속에서도 꽃을 피워낸다. 꼭 꽃집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꽃은 아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미소와 사랑을 전해줄 수 있다.
아침밥을 먹고 난 자리에 밤새 필사해둔 안명희의 ‘꽃’을 놓아두었다. 엄마가 꽃임을, 우리들의 꽃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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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려상>
[중고등부]
나의 바다로
- 김순옥 작가의 <해양을 넘어 대양을 돌아서>
- 통영여자중학교 최 유 진
제가 독후감상문을 쓸 작품은 김성원 작가의 ‘해양을 넘어 대양을 돌아서’입니다. 저는 원래 ‘시’ 보다는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보단 기존의 익숙함을 더욱 좋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이 시를 읽고 나서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이 시에서는 여기서 머물지 말고 더 넓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가라는 듯한 느낌이 드는 말이 있습니다. 또, 걸림돌 없이 본인이 꾸는 꿈을 크게 가지고 자신감 있게 살아가라는 뜻도 함께 포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의 청소년들은 꿈을 꾸지만, 성적, 학비, 인간관계 등 다양한 자신들만의 장벽이 있어 꿈을 포기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 어른들은 꿈을 크게 가지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이 직업을 가졌을 때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 ‘공부를 하면서 내가 이 직장에 취직할 수 있을까’라는 말 등의 생각이 더 많이 듭니다. 심지어 요즘 AI 기술도 발전하는 중이라 직업과 관련되어 직업이 사라진다, AI가 발전하고 있으니 과학 쪽으로 가야만 취직할 수 있는 길이 있다 등의 말들이 많이 나오는 추세입니다.
이런 시대 속에 살아가는 청소년인 저희는 점점 힘든 길을 걷고 있습니다. 1연에서 말하는 내용은 왜 이렇게 좁은 곳에서만 살려고 하냐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라도 해보라고 떠미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저는 이 느낌에 되게 많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제가 저번 시험을 못 보고 나서 부모님과 깊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전 그때 “네가 첫 번째 시험보다 이번 시험을 더 노력했어? 내 생각에는 아니었어, 미래에 대한 준비된 생각이 있어? 네 생각은 어때? ” 와 같은 이야기들을 저는 부모님과 얘기를 했었습니다. 저가 1연을 읽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이 나면서 제 삶 또한 한 번 더,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2연을 읽었을 땐 느낌이 사뭇 달랐습니다. 2연부터, 저는 항상 저를 뒤에서 챙겨주는 부모님이 얘기하시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잔소리라고 생각하고, 듣기 싫은 소리라고 생각하는 부모님이 하시는 말들이 그 순간에 들으면 짜증이 나고, 화도 나지만 시간이 흘러서 생각해 보면 나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주는 말들이었던 걸 늦게 깨닫습니다.
5연을 읽어보면, 자식이 꿈을 이루러 떠난 후에 성공해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부모님의 마음을 눌러 담은 것 같습니다. 부모님들의 마음은 다 같은 것 같습니다. 자기의 자식이 가장 성공했으면 좋겠고, 행복하길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은 저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줍니다.
김성원 작가가 생각하는 청소년, 즉 우리는 ‘배’라고 생각하면서 이 시를 쓴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배의 의미가 사람이나 짐 따위를 싣고 물 위로 떠다니도록 만든 물건이고, 모양과 쓰임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불립니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배처럼 우리 또한 배와 같이 살아가라는 뜻 아닐까요?
제가 여기서 생각하는 의미는 원래 살던 고향에서 서울과 같은 곳으로 상경을 하는 것이고 상경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사람마다 꿈은 다르고, 하는 행동, 생각마저 다르므로 여러 가지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배는 가야 하는 목적지로 갔다가 다시 되돌아서 옵니다. 그래서 나의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으로 가서 꿈을 이루고 그 꿈과 관련된 행복과 이뤘다는 성취감을 가지고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6연과 7연을 같이 보면, 꿈을 이루고 돌아왔을 때 힘껏 안아주겠다는 말이 나옵니다. 왠지 이 말은 수능을 본 뒤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안아주는 부모님의 마음과도 비슷한 마음 아닐까요? 중학교 2학년부터 시작해서 한 학기에 2번, 즉 1년에 4번을 치는 시험을 5년 동안 보고 이제 그 고생길을 끝낼 마지막 중대한 시험을 끝낸 학생들을 안아주는 부모님의 마음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유사한 것 같습니다.
저는 다른 작품들도 많았지만, 이 작품을 고른 이유는 저의 안에 있는 닫힌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전 기존만을 좋아하고 새로움을 싫어하던 사람이었고, 저에게 정확한 꿈조차 없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꿈들은 미래에 부딪혔습니다. “ 내가 하고 싶은 것까진 아니지만, 돈은 잘 벌 수 있겠지?”, “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순 없잖아. 미래에도 꾸준히 직장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직업이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큰 꿈을 가질 수도, 자신 있게 꿈을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를 읽고 나서는 용기가 조금씩 생긴 것 같습니다. 원래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버리고, “ 큰 꿈을 가져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가능성이 없으면 뭐 어때? 내가 하고 싶은 거라는데, 내 뒤에는 부모님이 응원해주시고 계시는데 나라면 할 수 있지! ”라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해양을 넘어 대양을 돌아서 >를 쓰신 김성원 작가님에게 감사의 인사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전 다른 청소년들에 비해 고민거리가 작은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보다 심한 고민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분들에게 꼭 이 시를 추천해주면서 해주고 싶은 말이 생겼습니다. 꿈을 못 이룰 것 같다는 의심이 생겨도, 주변 사람들이 그건 아니라고 말려도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꿈도 꿔 볼 수 있다는 것을,
큰 꿈을 꾸던 작은 꿈을 꾸던, 그것도 하나의 꿈이니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꿈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더 문제가 크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꿈을 꾸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요. 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전해주고 싶은 저만의 바다로 떠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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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려상>
[대학일반부]
시조 <수강사>(제25경)를 읽고
- 경성대학교 국문학과 2학년 김 예 은
해마다 노벨상 수상자의 이름이 각종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름은 거의 그 자리에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이 유일무이한 우리나라 노벨상이었다. 이에 비하면 일본은 29명이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바 있고 특히 유대인은 일본의 10배나 많은 수상자가 있다.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가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특히 부산은 예술의 불모지라는 분들도 간혹 있는데, 이러한 부산의 순수 문예지인 <釜山文學>이 발간된 이래로 벌써 제44호라니 나와 같은 병아리 국문학도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이번 <부산문학> 10월호에는 ‘부산 100경’에 관한 김영찬 시인의 시조 작품과 함께 펜화 작가 백승영 화백의 <금정산성 동문>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이 ‘부산 100경’을 그린 펜화와 그것들을 읊은 시조 작품들이 벌써 43경까지 소개되고 있으니 조만간 100경을 다 채울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크다. 이 ‘부산 100경’은 2030년 부산 엑스포의 성공개최를 기원하고 부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프로젝트라고 하니 뜻깊은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로서는 부산을 대표하는 ‘부산 100경’이 과연 어디일지? 더욱 궁금하기만 하다. 특히 이번 10월호의 제25경 <수강사>를 읽고서는 예전 수강사(守彊祠)를 처음 방문했을 때의 추억이 새삼 떠올라 더 많은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때 외할아버지께서 수영 팔도시장 위에 있는 사적공원에 놀러 가자고 하셨다. 그때 기대 반 설렘 반 갔던 곳은 다름 아닌 안용복 장군의 사당인 수강사였다. 외할아버지께서 ‘수강사(守彊祠)’는 우리 강토를 수호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하시면서 수강사에 왜 왔는지 알려 주셨다. 해마다 4월 18일에는 수강사에서 안용복 장군의 제사를 올리고 있었으나 영정 없이 위패만 모셨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외할아버지께서는 2020년에 안용복 장군 영정 제작을 의뢰받아 초상화를 그리셨고 그 안용복 장군 영정을 나에게 보여주시고 싶으셨던 것이었다. 외할아버지께서 직접 그리신 안용복 장군의 영정을 보자 가슴이 뭉클해지며 외할아버지가 너무 대단하시고 자랑스러웠다. 어떻게 그 시절 안용복 장군을 직접 보지도 않으셨는데 이렇게 위풍당당하고 위엄 있고 멋지게 초상화를 그리셨을까 궁금하기까지 하였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안용복 장군 영정 제작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되어 매우 영광스럽고 감회가 깊은 시간이었다고 하셨다. 나는 외할아버지께서 그리신 안용복 장군 초상화를 계속 뚫어지게 보게 되었고 그러는 동안 안용복 장군의 기상이 내 마음 깊숙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김영찬 시인의 <수강사> 시조 속에도 몇 년 전 수강사(守彊祠)에서 안용복 장군 영정을 봤을 때처럼 그 기상과 나라 사랑의 의지가 깊게 전해졌다. 1980년도부터 일본은 노골적으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한일관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스스로가 독도를 조선 땅임을 인정한 문서가 있는데 이 문서가 안용복 장군이 일본 막부로부터 독도 영유권을 당당히 주장하여 문서로 공인받은 것이었다. 특히 김영찬 시인의 <수강사> 시조 3연 2절의 “나라 땅 온전해야 후손이 번창한다.”라는 부분이 특히 와닿는다. 우리 조상들의 애국심으로 지금의 우리가 번창하고 있구나, 나도 우리 후손들을 위해 좀 더 애국심을 키워야 하지는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김영찬 시인의 <수강사>를 읽으면 알 수 없는 비장함에 두 주먹을 쥐게 된다. 예전 수강사에서 안용복 장군의 영정을 처음 보았을 때의 감동을 다시 되새기며 김영찬 시인의 <수강사>를 천천히 읽어보았다. 3연 3행의 “아이야 순국자 이어 우리 영토 지키자” 라는 문구처럼 순국자들의 얼을 기리며 나라 사랑의 의지를 굳건히 하고 싶다.
10월 25일은 ‘독도의 날’이라고 한다. 1900년 10월 25일에 고종황제가 칙령 41호를 통해 독도를 울릉도의 관할 지역으로 포함 시키면서 이 섬이 우리나라의 영토임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였고 이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정한 날이 ‘독도의 날’이라고 한다. 여태까지 일본과는 위안부 문제나 영토 문제 등 여러 사항으로 불편한 관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나 또한 일본이 왜 그러는지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지만 특별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해야 할지 깊게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안용복 장군의 나라 사랑의 열정과 그 애국심을 생각하니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기만 하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힘쓴 사람들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이 현대에 남겨진 우리 후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가오는 10월 25일 독도의 날을 맞아 수강사를 다시 찾아가고 싶다. 수강사 안용복 동상 후편의 건립문에는 ‘일본이 지금까지 독도가 그들의 영토임을 주장하며 망언을 늘어놓는 현실에서 우리는 이 동상 앞에서 장군의 정신과 업적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고 후손들에게 길이 전해주고자 한다.’라고 적혀 있다. 외할아버지께서 안용복 장군의 영정을 그리셨을 때도 김영찬 시인이 <수강사>라는 시조를 쓰셨을 때도 안용복 장군의 나라 사랑의 의지와 기개를 우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한다. 안용복 장군이 외쳤던 것처럼 “독도는 우리 땅이다”라고 크게 소리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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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려상>
[대학일반부]
송수이 작가의 <마중>을 읽고
- 이 창 희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을 어떤 의미일까? 또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고등학교 시절 나는 등하굣길을 달과 함께했다. 0교시 세대로 새벽이면 집을 나섰다. 모든 일상을 학교라는 공간에서 보냈다. 그리고 밤이 되면 다시 달을 벗 삼아 집으로 돌아왔다. 고3 수험생이 되어서 나의 귀가 시간은 조금 더 늦어졌다. 12시가 되면 짐을 정리하고 집으로 나섰다. 지하철을 내려 개찰구로 올라가면 나를 맞이하는 사람은 언제나 엄마였다. 뭐가 그리 급한지 마중 오는 곳은 점점 나의 도착역과 가까워졌다. 처음에는 집 앞에서 나를 마중하였다. 얼마 지나서는 아파트 입구에서, 지하철역에서, 그리고는 개찰구 앞까지 내려왔다. 엄마의 한 손에는 늘 검정 봉지 하나가 있었다. 그 안에는 알미늄호일에 둘둘 말린 김밥 한 줄이 있었다. 행여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는 아들이 배고플까 봐 하루도 어김없이 준비하였다. 나의 수험시절, 짧지만 긴 고3 시절을 버텨낼 수 있었던 힘은 엄마였다. 아니 정확히는 언제나 응원해주고 또 걱정해주는 엄마의 마음과 마중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었다. 20대 중반 나는 또 한 번의 수험생활을 하였다. 부모의 마음이란 그런 것일까? 7년간 잊고 지냈던 엄마의 마중은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무뚝뚝하던 아빠까지도 합세를 하였다. 아빠는 매일 출근길에 해운대 도서관으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나는 갓 싼 따끈한 엄마표 도시락과 책 꾸러미를 짊어지고서 도서관으로 출퇴근 하였다. 1년 동안 어김없이,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엄마의 마중은 지속 되었다. 늦은 밤 버스에 내리면 엄마는 환한 미소로 나를 맞이하며 피로를 날려주었다. “아들 힘들지? 괜찮아?”라는 한마디 말은 아직도 내 귓가에 맴돈다. 집에 도착하기도 전 정류소에서 우리의 책가방 전쟁은 시작되었다. 하루 종일 공부하다 온 아들이 안쓰러웠던지 엄마는 늘 나의 책가방을 탐냈다. 나는 혹시라도 가방이 빼앗길까 봐 보물처럼 꼭 껴안고 집으로 함께 돌아갔다.
7년의 시간이 그렇게나 긴 세월이었을까? 내가 철이 들은 까닭이었을까? 아니면 세월의 무게를 견디기에 엄마가 버거운 것이었을까? 고3 수험생 시절 나를 마중 나온 엄마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중력의 무게를 못 이겨 움푹 패어 버린 주름과 첫서리를 맞은 듯한 희끗희끗한 머리로 인해 엄마의 마중은 편치만은 않았다. 엄마의 미안한 마중을 피하기 위해 나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귀가하였다. 하지만 버스에 내리자마자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아들 일찍 왔네!” 바로 엄마였다. 나의 얄팍한 꾀는 엄마의 기다림과 사랑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 뒤로 엄마와의 술래잡기 마중은 며칠간 이어졌다. 결국 나의 참패였다. 엄마의 마중은 단지 나에 대한 사랑과 기다림의 표출만은 아니었다. 어느새 엄마의 일과 속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행복이라는 감정을 일으키는 매개체 역할까지도 하였다. 1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 나는 합격 두 글자를 엄마, 아빠에게 전달하였다.
엄마의 마중은 언제나 끝날까? 과연 끝은 존재할까? 상경한 이후에도 당신의 기다림은 더욱 간절해졌다. 고향 가는 날이 되면 아침부터 울려대는 전화. “아들! 몇 시 기차였지?”, “도착시간은 언제지?”라며 전화기 너머로 건너오는 한껏 상기된 목소리. 도착할 시간이 되면 열차에서 울려대는 진동소리. “거의 다 왔지? 도착해 있으니 천천히 나와.” 마중을 받을 나이가 훌쩍 지났음에도 당신의 마중은 끝날 줄을 모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중 나오는 시간은 더욱 빨라졌다. 뭐가 그리 걱정되는지, 뭐가 그리 또 급한지. 엄마의 시계는 고장 나 버린 걸까? 자식에 대한 그리움으로 하염없이 시계만 돌렸나 보다.
오늘 나는 집 밖을 나선다. 타지 생활하는 막내아들의 살림을 염탐하기 위해 엄마가 오는 날이다. 엄마가 느꼈던 감정이 이러하였을까? 출발하기 전부터 걱정이 앞선다. 집에서 역까지 가는 길, 혹시 지하철을 반대로 탄 건 아닌지, 잘못 내리는 건 또 아닌지, 괜히 무거운 짐을 챙긴 건 아닐까? 그리고 아픈 다리에 혹 서서 오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오늘은 내 손목시계가 고장 난 것만 같다. 도착할 시간이 한 참 전인데도 나는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엄마도 이런 걱정 때문에 나에게 한 발 한 발 가까이 왔나 보다.
엄마라는 두 음절 - 나이가 들수록 코끝이 찡해지는 단어이다. 나는 어리고 젊어 본 적은 있지만, 엄마의 나이처럼 늙어 본 적은 없다. 그때나 되면 엄마의 깊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볼 수 있을까? 송수이 작가의 <마중>을 읽고 핑계김에 오늘 나는 어머니 전상서를 긁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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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감상문에 대한 입상과 비평”
“독후감상문공모전” 13편 중에서, 1월호에 게재할 응모작을 보면 전체적으로 골고루 수준을 갖춘 작품들이었다. 그중에는 대학원생, 퇴직자들로 이미 시나 소설가로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도 있었으며, 일반부는 모두 좋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파트 별 응모의 규칙에 준거하였다. 다만 용기나, 희망적인 면을 추가하였으며 같은 내용, 작가 등의 제목은 피하여 선정하였다.
우수상으로 선정된 김지수님이 읽은 <거울 앞에 서서>에 대한 감상문은 자신의 삶에 대한 철학을 묻고 있다. 철학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의문과 제기 그리고 미래의 설계에 대한 방향이다. 그런데 김지수님은 어려운 환경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이 과정을 긍정적인 면으로 승화시켜주었다. ‘다짐한다’ 등 미래가 어떤 모습이든 받아들이는 자세로 ‘세상을 똑바로 마주하기’의 결심은 본인은 물론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플라시보 효과’를 주었고 글솜씨도 좋았다.
그 외에도 이창희님이 읽은 <마중>, 김예은님이 읽은 시조<수강사(제25경)>, 이혜운님의 ‘그대, 꽃인 것을 부디 잊지 마세요’(<꽃을 읽고>),
최유진님이 읽은<해양을 넘어 대양을 돌아서>, 혜원님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주셔서’에서 <구월이 아름다운 것은> 모두 장려상으로 초등부, 중고등부, 일반부 골고루 선정하였다.
<마중>은 인간의 존재의미를 말하고 있다. - 수험생활에 겪은 부모님의 존경에 대한 상서였으며, 시조 <수강사>는 부산을 알리는 100경에 대한 심경으로 독도에 대한 애향심마저 보였다. <‘꽃’을 읽고>에서는 무척 찡한 느낌을 받았다. - ‘학생으로서 어머니에게 부치는 아름다운 한편의 소고이다. ‘아침밥을 먹고 난 자리에 밤새 필사해 둔 ’꽃‘이라는 시를 놓아두었다. 엄마가 꽃임을! 잊지 말라고 ’나의 바다로‘<해양을 넘어 대양을 돌아서>는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으며, 자신의 꿈과 희망을 연별로 조목조목 나들이 목을 놓았다. 닫힌 문을 열었다 하니 다행이다. 그리고 <구월이 아름다운 것은> 읽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헤어진 친구를 그리워하며 어릴 때 자신을 키워준 부모님과 할머니를 생각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그려내고 있다.
- 심사위원 정혜국(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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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 첫회라서 기대반 우려반이였었는데, 다행히 출품 수에 비해 뛰어난 기량의 작품이 많아서 감사합니다.
초등부 글은 주위 분들의 과욕 탓인지, 어린이다운 순수성이 아쉽습니다.
중고등부는 과시욕이 보입니다. 절제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이 필요합니다.
일반부는 지적 언어적 유희의 유혹에서도 자유로워야 합니다. 놓치기 아까운 수작들이 안타까웠고,
입상작 선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을 토로합니다.
- 심사위원 박욱(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