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한 문학잡지 20여권, 폐지로 버린 이유
사회경험 없던 순수시절, 세월 지나니 문학은 없고 영업만 있었다
저는 지난 13일 제 작품 몇편이 실린 월간 문학잡지 20여 권을 폐지 수집상에게 줘버렸습니다. 2000년 봄쯤에 발행된 제 시(詩) 작품이 실린 문학잡지입니다. 이달 16일 위층으로 이사하는데 짐 정리하다 보니 그 문학잡지가 눈에 많이 띄더군요. 9년 동안 세 번 이사 하면서 그것들을 계속 가지고 다녔습니다. 제가 시(詩등)작품으로 등단한 문학잡지를요. 그런데 오늘 그것들을 단돈 2천원을 받고 폐지 고물상에 넘겼습니다. 마음이 이렇게 후련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 99년 12월 경에 서울에서 첫 사회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제가 들어간 회사가 환경관련 전문 신문사였는데 제대로 된 곳이 아니어서 급여는 밀릴대로 밀리고 언제 줄지 기약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한 문학잡지를 소개해줬고 제 작품을 한번 내보라고 하더군요. 당시만 해도 제가 시 쓰는데 미쳐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대학 때 써 놓은 시 작품을 정리해 제 프로필과 함께 그 문학잡지 어느 분에게 건넸고 심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며칠 후에 연락이 왔고 신인상에 당선됐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당선소감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정성스럽게 소감을 적어 보냈습니다.
"세상에, 내가 월간 문학잡지 신인상에 당선되고 내 시가 전국 서점에 나간다니…."
신인상 당선돼 좋은데 책 수백 권 사야... 당연한 수순으로 알았다
그런데 참 고민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됐습니다. 문학잡지사 측에서 그 문학잡지를 대량으로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은 200부~300부씩 구입하시는 분들도 있다며 신인상 당선됐으니 무슨 출판기념회도 하고 지인들에게 기념으로 나눠줘야 하므로 최소 100권 정도는 구입하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권당 1만원이었고 100권이면 100만원이었습니다. 출판기념회와 지인들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그 말이 당연한 수순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수중에 천 원짜리 몇 장도 없을 정도로 힘든 생활을 할 때라 책을 구입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 작품이 실린 문학잡지를 포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골 아버지께 이건 꼭 필요한 것이고 중요한 것이므로 최소 50권은 구매해야 한다고 설득해 50만원 주고 50권을 구입했습니다. 신인상에 대한 별도의 시상식은 없었고 신인상 패를 만든다며 5만원을 더 보내달라고 했지만 도저히 여의치 않아 보내주지 못했습니다. 알고 보니 신인상 상패까지 자비로 만들어야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50권 중에 20여 권은 지인들에게 나눠줬고 20여 권은 이사할 때마다 가지고 다녔습니다.
큰 자랑이자 대단한 이력이던 게 오점으로 남아
그 후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저는 알았습니다. 2000년 당시 제가 얼마나 순진하고 순수했다는 것을 말이죠. 문학을 해야겠다는 순수함으로 덤비고 도전한 것이 결국은 출판계의 잇속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좋은 말로 그 문학잡지의 영업전략이라고 할 수 있죠.
자비 출판을 하고 자비로 책을 사서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건 뭐라할 수 없지만 신인상 이라는 '풍선' 같은 바람을 넣어 대량으로 책을 구입하게 하는 일부 문학잡지사의 '영업'임을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됐습니다.
2000년도 당시에는 자랑이자 나의 큰 이력이던 그 문학잡지의 '이상한 등단'은 지금 보면 하나의 오점이 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문학잡지 책을 받아보니까 제가 적은 당선 소감 제목에 오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인쇄됐더군요. 한글 14포인트의 큰 글자의 제목인데 눈에 뻔히 보이는 오탈자를 그대로 내보낼 정도였으니 교정, 검열 등 기본적인 편집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그때 좀더 빨리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사회 경험이 전혀 없었고 제가 너무 순진했습니다.
내일 이사를 앞두고 그 문학잡지 20여 권을 폐지상에 주고 이제는 이력에서 빼 버린, 아니 부끄러운 과거의 오점으로 남게 됐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편합니다.
헌책방이 아닌 폐지수집상에 넘겨버린 까닭도 바로 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