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일반부

송수이 작가의 <마중>을 읽고

by 포포로 posted Nov 2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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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이 작가의 <마중>을 읽고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을 어떤 의미일까? 또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고등학교 시절 나는 등하굣길을 달과 함께했다. 0교시 세대로 새벽이면 집을 나섰다. 모든 일상을 학교라는 공간에서 보냈다. 그리고 밤이 되면 다시 달을 벗삼아 집으로 돌아왔다. 고3 수험생이 되어서 나의 귀가 시간은 조금 더 늦어졌다. 12시가 되면 짐을 정리하고 집으로 나섰다. 지하철을 내려 개찰구로 올라가면 나를 맞이하는 사람은 언제나 엄마였다. 뭐가 그리 급한지 마중 오는 곳은 점점 나의 도착역과 가까워졌다. 처음에는 집 앞에서 나를 마중하였다. 얼마 지나서는 아파트 입구에서, 지하철역에서, 그리고는 개찰구 앞까지 내려왔다. 엄마의 한 손에는 늘 검정봉지 하나가 있었다. 그 안에는 알리미늄 호일에 둘둘 말린 김밥 한 줄이 있었다. 행여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는 아들이 배고플까봐 하루도 어김없이 준비하였다. 나의 수험시절, 짧지만 긴 고3 시절을 버텨낼 수 있었던 힘은 엄마였다. 아니 정확히는 언제나 응원해주고 또 걱정해주는 엄마의 마음과 마중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었다. 20대 중반 나는 또 한 번의 수험생활을 하였다. 부모의 마음이란 그런 것일까? 7년간 잊고 지냈던 엄마의 마중은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무뚝뚝하던 아빠까지도 합세를 하였다. 아빠는 매일 출근길에 해운대 도서관으로 나를 데려다 주었다. 나는 갓 싼 따끈한 엄마표 도시락과 책 꾸러미를 짊어지고서 도서관으로 출퇴근 하였다. 1년 동안 어김없이,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엄마의 마중은 지속되었다. 늦은 밤 버스에 내리면 엄마는 환한 미소로 나를 맞이하며 피로를 날려주었다. “아들 힘들지? 괜찮아?”라는 한마디 말은 아직도 내 귓가에 맴돈다. 집에 도착하기도 전 정류소에서 우리의 책가방 전쟁은 시작되었다. 하루 종일 공부하다 온 아들이 안쓰러웠던지 엄마는 늘 나의 책가방을 탐냈다. 나는 혹시라도 가방이 빼앗길까봐 보물처럼 꼭 껴안고 집으로 함께 돌아갔다.

 

7년의 시간이 그렇게나 긴 세월이었을까? 내가 철이 들은 까닭이었을까? 아니면 세월의 무게를 견디기에 엄마가 버거운 것이었을까? 고3 수험생 시절 나를 마중 나온 엄마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중력의 무게를 못 이겨 움푹 패여버린 주름과 첫 서리를 맞은 듯한 희끗희끗한 머리로 인해 엄마의 마중은 편치만은 않았다. 엄마의 미안한 마중을 피하기 위해 나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귀가하였다. 하지만 버스에 내리자마자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아들 일찍 왔네!” 바로 엄마였다. 나의 얄팍한 꾀는 엄마의 기다림과 사랑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 뒤로 엄마와의 술래잡기 마중은 며칠간 이어졌다. 결국 나의 참패였다. 엄마의 마중은 단지 나에 대한 사랑과 기다림의 표출만은 아니었다. 어느새 엄마의 일과 속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행복이라는 감정을 일으키는 매개체 역할까지도 하였다. 1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 나는 합격 두 글자를 엄마, 아빠에게 전달하였다. 

 

엄마의 마중은 언제나 끝날까? 과연 끝은 존재할까? 상경한 이후에도 당신의 기다림은 더욱 간절해졌다. 고향 가는 날이 되면 아침부터 울려대는 전화. “아들! 몇 시 기차였지?”, “도착시간은 언제지?”라며 전화기 너머로 건너오는 한껏 상기된 목소리. 도착할 시간이 되면 열차에서 울려대는 진동소리. “거의 다 왔지? 도착해 있으니 천천히 나와.” 마중을 받을 나이가 훌쩍 지났음에도 당신의 마중은 끝날 줄을 모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중 나오는 시간은 더욱 빨라졌다. 뭐가 그리 걱정되는지, 뭐가 그리 또 급한지. 엄마의 시계는 고장 나 버린 걸까? 자식에 대한 그리움으로 하염없이 시계만 돌렸나보다.

 

오늘 나는 집 밖을 나선다. 타지 생활하는 막내아들의 살림을 염탐하기위해 엄마가 오는 날이다. 엄마가 느꼈던 감정이 이러하였을까? 출발하기 전부터 걱정이 앞선다. 집에서 역까지 가는 길, 혹시 지하철을 반대로 탄 건 아닌지, 잘못 내리는 건 또 아닌지, 괜히 무거운 짐을 챙긴 건 아닐까? 그리고 아픈 다리에 혹 서서 오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오늘은 내 손목시계가 고장 난 것만 같다. 도착할 시간이 한 참 전인데도 나는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엄마도 이런 걱정 때문에 나에게 한 발 한 발 가까이 왔나보다. 

 

엄마라는 두 음절은 나이가 들수록 코끝이 찡해지는 단어이다. 나는 어리고 젊어본 적은 있지만, 엄마의 나이처럼 늙어본 적은 없다. 그때나 되면 엄마의 깊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볼 수 있을까? 송수이 작가의 <마중>을 읽고 핑계 김에 오늘 나는 어머니 전 상서를 긁적여본다. 

 

 

이창희 / 대학원생 / 890125 / 010-7209-5363 / po77777@korea.ac.kr

 

송수이 작가의 <마중>을 읽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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