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3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Y0dWVqD.jpg

 

가을 하늘

 

만리장성 부근에서 함께 살던

그들의 기나 긴 전생 이야기는

가을날 오후 목장의 쓰러지는 풀잎 위로

한꺼번에 들이치는 햇살로

올올이 풀어지는 것이었어

고성 목장의 언덕, 행복한 숲그늘 아래

 

대자연의 감출 수 없는 매혹이었기에

멀찌감치 서서 바라보는

주인의 눈빛과 말의 눈빛이

허공에서 천둥 번개를 마구 교환할 때면

우연히 이생에 다시 마주친

주인과 말은 서로에게 정해진

관계를 마득히 잊곤 하였는 데

 

아득하게 잊혀진 세계의 몽환 속으로

아무런 생각없이 막 빨려들어가는 너의

검은 눈동자 가을대기 속으로 푹푹 뿜어내는

너의 더운 입김은 아마도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대자연의 숨결이었기에

 

이슬 맺힌 풀잎 사이를 유유히 거닐다가

다시 먼 하늘을 바라보는 그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 고향풍경이던가

 

그렇게 춤추는 느릅나무 어린 잎새 사이

툭 튀어나온 엉덩이뼈를 옆으로 불룩거리며

주인인 나를 향하여 말없이 걸어오곤 하였지

 

천막 사이 울려퍼지는 주인집

소년 마두금소리 듣는 양

윤기나는 갈색털은 푸르르 일어서며

다시 찾은 생의 기쁨에 부르르 떠는 것이었어

 

묵언의 꼴을 볼 씰룩거리며 씹곤 하였는데

영락없이 늙은 명상가의 표정이었지

고향에서 보던 것과 똑같이 찬란한 아침햇살에

마천루 높은 산정을 떠도는 흰 구름 아래

 

그렇게 다시 한몽직통항로를 통해

강원도 고원지대 고성목장에 실려온 흑색말은

통통하게 살진 뱃구리에 힘이 넘쳐

쳐진 흙빛 살가죽 치렁하게 늘어뜨리며

떠오르는 아침햇덩이를 바라보며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45 어떤 위험한 유영 썬샤인77 2018.01.15 34
944 겨울을 지난 강가에 나온 버드나무 썬샤인77 2018.01.13 34
943 진달래 소식 썬샤인77 2018.02.19 34
942 한때 살아봄직한 삶 썬샤인77 2018.02.19 34
941 열매로 바뀌고 휴미니 2019.01.30 33
» 느릅나무 어린 잎새 사이 휴미니 2019.01.21 33
939 불타오르는 태양 빛 휴미니 2019.01.15 33
938 다 닳아버렸구나 휴미니 2018.12.31 33
937 어느 수녀의 기도 휴미니 2018.12.23 33
936 번민과 고뇌 휴미니 2019.03.07 33
935 너의 마음과 지식 휴미니 2019.03.04 33
934 이유 있는 사랑 휴미니 2019.02.18 33
933 하늘나라 동생 휴미니 2019.02.15 33
932 헤어지려고 휴미니 2018.11.14 33
931 겨울 눈 녹으면 봄은 오나 썬샤인77 2018.03.14 33
930 고향생각 하며 썬샤인77 2018.03.11 33
929 우리들 흰벽 썬샤인77 2018.03.07 33
928 하얀 목련 썬샤인77 2018.02.13 33
927 이젠 봄이 오는가 하여 썬샤인77 2018.01.29 33
926 부질없는 짓 썬샤인77 2018.01.27 33
Board Pagination Prev 1 ... 6 7 8 9 10 11 12 13 14 15 ... 58 Next
/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