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27 12:06

알맞게 익혀줄 효소

조회 수 23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7hqIr4x.jpg

 

관능적인 숙성

 

그러니까 당신과 내가

균이 되어 세상을 푹 썩혀야 한다

네몸과 내몸이 한데 어울려

뼈까지 흐물흐물 녹혀야 한다

 

서로 몸 눕히면서 포옹하면서

한바탕 눈물 흘린 것도 웃은 것도

항아리 속의 장 같은 세상을

알맞게 익혀줄 효소라는 것이다

 

새끼 손가락으로

항아리 속에서 익어가는

당신을 찍어 맛을 보니

지옥같이 아득하다 그윽하다

 

거기에다 꽃도 잎도 열매도

얼지 않게 깊숙히 넣었다

게다가 발효하기 좋게

바야흐로 화창한 봄날씨다

가랑비까지 촉촉하게 내려

당신과 내가 옷이 다 젖었다

 

그러니까 당신과 나와,

해와 달로 만든 새벽과 어둠과

그리고 소금의 바다와

불의 사막과 얼음의 강이

항아리 안에 다 들었다는 말이다

 

한 철 밀봉해서 담가두었던

生의 뚜껑을 열었더니

냄새가 향기롭다

장독 위에 올려놓은 삶마다

숙성으로 움 튼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45 그리운 봄 산에서 썬샤인77 2018.01.27 28
1044 노을 썬샤인77 2018.01.27 28
1043 부질없는 짓 썬샤인77 2018.01.27 33
1042 나의 다정스런 햇살은 썬샤인77 2018.01.28 35
1041 쓸쓸히 길위에 눕다 썬샤인77 2018.01.28 34
1040 이젠 봄이 오는가 하여 썬샤인77 2018.01.29 33
1039 그렇게 달밤에 익는 것 썬샤인77 2018.01.29 25
1038 황사바람 부는날 썬샤인77 2018.01.29 41
1037 개울의 어름치 썬샤인77 2018.01.29 24
1036 창을 바라보며 썬샤인77 2018.01.30 32
1035 외로운 봄비 썬샤인77 2018.01.30 25
1034 그렇게 바람으로 스쳐 갈 언어의 미 썬샤인77 2018.01.30 32
1033 떡국 개구리 2018.01.31 24
1032 흰머리 개구리 2018.01.31 43
1031 개구리 2018.01.31 30
1030 저 망나니는 흉기를 도구로 쓴다 썬샤인77 2018.01.31 22
1029 나무에게 썬샤인77 2018.01.31 26
1028 새내기 봄 썬샤인77 2018.01.31 20
1027 창밖에 봄이 올 때면 썬샤인77 2018.02.01 31
1026 봄의 노래를 들으며 썬샤인77 2018.02.01 23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9 10 ... 58 Next
/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