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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일반부
2023.11.20 16:25

김영산 작가의 그랜드 투어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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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과 인생

    

 애덤 스미스, 경제학의 아버지인 그도 40대 초반에 가정교사로서 귀족의 아들과 동행하며 2년간 유럽여행을 하였다. 그랜드 투어의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참여자로서 경험이 후일 국부론 집필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장기간 해외여행은 경제력이 충분히 뒷바라지해야 가능한데, 당시 문화적 변방에 속했던 영국이 이처럼 자녀 교육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건대 자녀를 훌륭히 키우려는 마음과 함께 집안과 나라의 건설적 미래를 창조하고픈 욕구가 컸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일부 귀족층에게 한정된 특권이었으나, 이로 인해 축적된 교육 성과와 문화적 영향력이 사회 전반적으로 파급되어 선진국으로 거듭났다. 그래서 지난날 그랜드 투어의 본뜻을 살피고 되살려 활용해 보자는 게 이 수필의 의도이다. 아울러 우리 학부모가 자식 교육의 참된 방향성을 잃고서 엉뚱한 데 많은 사교육비를 쏟아붓는 것은 아닌지 생각게 한다.

 그랜드 투어를 비롯한 모든 여행은 새로운 도전을 통해 생소한 문화를 만나서 세상과 인간을 넓고 깊게 이해하도록 하는 경험이다. 달리 말하면 여행의 경험이 쌓이면 쌓일수록 세계에 대한 이해도가 더 높아진다는 뜻이다. 더욱이 방문하는 곳이 고도로 문화와 예술이 발전됐다면 다양한 지적 자극을 주어 배움과 더불어 정신적 성장도 꾀할 수 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왕이면 감수성이 예민한 젊을 때 하는 여행이 훨씬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열린 순수한 마음으로 의외의 상황을 만나거나 낯선 이와 교류할 때 아무 편견 없이 새로움을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퇴폐적이고 불량한 것을 거르는 비판 능력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그랜드 투어에서 가정교사가 동반된 까닭이다.

 특히 청소년과 다음 세대에게 교육적 의미를 담은 여행을 제공해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에는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세계 여행하기는 세대를 불문하고 공통된 뜻있는 체험이다. 예컨대 니체도 교수직 사퇴 후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이를 내면화하고 특유의 자기 생각으로 발전시킨 결과 많은 명작이 탄생하였다. 우리의 경우 연암 박지원이 세계적 여행을 했다. 당대 최고의 선진국인 청나라에 사절단으로 가면서 거대한 자연환경과 마주하고 또 발전된 중국 문물을 직접 목격했다. 이것이 그의 마음과 사고방식에 큰 충격을 주면서 조선사회의 낡은 유교 가치관을 버리고 선진제도를 본받으려는 의지가 드러난 열하일기가 곧 조선 판 그랜드 투어였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여행은 불편하기 그지없지만, 인간에게 여행은 본능적이다. 프랑스 철학자인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간을 호모비아토르라고 정의했다. 즉 인류를 여행하는 인간이라고 규정했는데, 인간은 원시 시대이래 끝없이 이동해왔고 그 본능이 우리 몸에 아로새겨졌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 속 아르고 원정대의 이아손처럼 집을 떠나서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자신과 대면하고 성장해가는 이미지가 여행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렇듯 여행은 단지 구경하거나 걸어가며 공간 이동하는 걸 일컬을 뿐 아니라 사색의 공간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정신적 여행도 포함한다. 어쩌면 이 여행은 가야 할 길이 명확지 않아서 힘든 반면 성공한다면 가장 기쁜 여행이 될 수 있다.

 글의 필자는 자신의 50대 시절, 3주간에 걸친 남미 여행을 그랜드 투어에 비유한다. 그 여행으로 말미암아 그랜드 투어에 버금가는 값진 경험과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남미 유적지 방문을 통해 화려했던 옛 문명과 역사를 알게 되고 서구의 식민지 개발에 의거 원주민의 언어와 풍습이 파괴된 슬픈 현실을 보았다. 그러나 과거를 극복하고 기존 문화와 유럽의 천주교가 융합된 것도 목도하였다. 게다가 혁명가 체게바라와 남미의 대표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알게 된 것이 자기 세계관에 적잖은 도전을 주었다고 하며, 그야말로 그랜드 투어처럼 유익한 현장학습이었다고 자부한다. 단순히 여행 시기로만 따져보면, 그의 여행은 매우 늦은 나이에 실행된 것이니 젊은 시절에 하는 그랜드 투어와는 다소 거리가 있으나, 그 목적의 달성엔 차이가 없다. 이 여행 전과 이후의 삶과 문학이 퍽 달라졌다고 하기에 그렇다.

 반면 내 경우를 돌아보면, 노년으로 접어든 여태껏 그와 같은 여행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좀 안타깝다. 기껏해야 일주일 남짓의 동남아시아 관광여행을 한 것에 불과하고, 다만 우리 내외와 아들 부부가 함께 대만 여행한 것이 제일 기뻤고 기억에 남았다. 모처럼 두 가족이 한마음으로 같은 즐거움을 나눈 첫 경험이고 유대감이 단단해진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젊은 시절에 세계 여행을 했다면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상상해 본다. 단연코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믿으며, 일찍이 큰 꿈을 안고 세상에 도전할 용기를 내지 못한 내가 다소 유감스럽다. 하지만 나의 과거를 부정하며 후회하진 않는다. 지금까지의 삶도 의미가 있고, 앞으로 좋은 경험을 할 기회를 갖고서 나답게 살면 될 뿐이다.

 한편 내 아들에겐 비록 그랜드 투어엔 사뭇 못 미치지만 나와 달리 세계를 이해할 기회를 주고자 노력하였다. 아들이 중학교 다닐 때 일본과 뉴질랜드 여행을 가게하고, 대학에 들어가선 독일과 이탈리아 여행길을 나서서 견문을 넓힐 교육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여행 기간이 대체로 짧아서 그랬는지 그의 삶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 역시나 온전한 교육적 여행은 보고 생각하며 변화하기에 넉넉한 시간이 뒷받침돼야 함을 뒤늦게 깨우쳤다. 내 생각에는 청소년기, 그랜드 투어와 동일한 효과를 얻으려면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를 활용해도 괜찮을 듯싶다. 그 나라의 언어는 말할 것도 없고 역사, 문화도 공부하며 사회 분위기를 실감하면서 이전의 자기를 탈피하여 새롭게 변신할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아마도 필자가 말하는 한국형 그랜드 투어와 상당히 부합될 수 있으리라.

 일을 완수코자 철저히 준비하는 것처럼 성공적인 여행을 위해선 세 가지 준비물이 필요하다. 우선, 가는 곳에 대한 사전 공부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미리 공부해가면 그만큼 배우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하나의 예로, 근래에 출간된 책 그랜드 투어 그리스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서양문화의 유적을 세심히 살피도록 여행자를 인도할 뿐 아니라 그 근원까지 탐구케 해서 단기간에 그랜드 투어와 같은 효용을 가져오리라 기대된다. 둘째로 개방된 마음이 여행 전 구비할 기본자세이다. 차별하지 않고 새로움을 인정하며 내게 자극과 도움을 주는 것을 거리낌 없이 수용함이 변화의 토대이다. 셋째로 신선한 여행자의 시선이다. 익숙함을 벗어나 낯선 것을 자기 시선으로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성찰이 가능하고 자기 정체성도 확인할 수 있다. 아무튼 그랜드 투어는 단지 유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인간과 세상을 만남으로서 탁월한 지혜를 얻는 길이 된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가 인간존재는 결핍으로 존재한다.’라고 말했는데, 이 결핍을 채우기 위한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여행이다. 즉 여행을 통해 자기 삶이 충만해지는 게 여행의 진정한 의미이다. 그리고 여행은 삶에서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찾는 과정이다. 새로운 볼거리로 재미가 충족되는 한편 여행이 주는 우연성에 의해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단서도 발견한다면 금상첨화이다. 어떠한 방식의 떠남이 되더라도 자기 삶이 충만하고 성숙해지는 것이 여행의 궁극적 목적이다.

 사실 인생 자체가 여행이므로 매일매일의 일상이 즐겁고 자유로우며 생활의 질을 향상하는 쪽으로 나아가야한다. 설령 거창한 목적을 지닌 인생의 그랜드 투어가 아닐지라도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한 삶의 여행이 되도록 수시로 자기 삶을 되돌아보는 태도가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그리고 한 번은 과거와 미래의 문을 활짝 여는 그랜드 투어에 나서서 인생의 완성에 한 걸음 다가서는 멋진 감동을 가지면 참 좋을 성싶다. 이럴 때 책과 동행은 그랜드 투어의 가정교사와 같고, 한층 감칠맛 나는 여행을 만들 것이다. 당장, 여행을 떠날 수 없는 나는 마음에 드는 책을 들고서 생각하는 여행인 독서를 하며 올해를 뜻깊게 마무리하고자 한다.

 

 

성명 : 이진목

직업 : 은퇴자

출생년도 : 1953년

전화번호 : 010-4216-7596

이메일 주소 : yijinm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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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쿨가이 2024.01.19 16:52
    좋은 이들과 여행을 하며 추억과 배움을 얻는건 참 의미있는 일인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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