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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고 고마워요…요한, 씨돌, 용현!

2012년 ‘괴짜 자연인’으로 알려진

김용현씨의 숨겨졌던 의인의 삶
SBS 이큰별 피디가 세상에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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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봉화치 마을에서 참새와도 친구하며 농부로 살아가던 씨돌의 모습. 화면 갈무리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지난 9일과 16일 2회로 나눠 방영된 <에스비에스 스페셜>  ‘요한, 씨돌, 용현’ 편을 본 수많은 시청자들은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뜨거운 반응을 내놓고 있다. 한평생 권력의 폭압에 맞서 싸우고 참사의 현장에서 몸사리지 않고 목숨을 구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이웃을 섬겨온 한 의인의 삶이 소개됐는데, 그 헌신에 견줘 그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너무 가혹했기 때문이다. “신이 과연 존재할까요? 저분을 부디 도와주세요.” 누리꾼들은 댓글로 기도한다.


제목의 ‘요한, 씨돌, 용현’은 한 사람이다. 1953년생인 용현(본명)은 요한(세례명)으로 살다가 씨돌(자신이 지은 이름)로 살았고 다시 용현으로 살고 있다. 그는 2012년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스비에스)에서 ‘자연인 김씨돌’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강원도 정선 봉화치 마을에서 사는 씨돌은 텃밭에서 지렁이와 얘기하고 땅바닥에 벌렁 누워 벌거벗은 배에 모이를 올려놓고 참새를 부르는 ‘괴짜’였다. 하지만 그에겐 자연인 씨돌 외에 요한과 용현이란 또 다른 삶이 있었다.

민주화 투쟁·재난 현장 달려가고
‘군 의문사’ 발로 뛰어 진상 밝혀
방송에 다 담지 못한 이타적 인생

이번 방송이 찾아낸 것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 고비마다 나타난 요한의 모습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거리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던 요한은 민주화운동으로 목숨을 잃은 가족 모임 ‘한울삶’과 함께 투쟁했다. 1987년 12월 군대에서 정연관 상병이란 한 젊은이가 숨지자 발로 뛰며 증거를 수집해 정치적 이유로 구타당해 숨졌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도 그였다. 그의 오랜 노력은 2004년 군의문사진상규명원회가 ‘정 상병은 당시 대선 부재자 투표에서 야당 대표를 지지했다가 구타당해 숨졌다’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결실을 맺었다. 그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와 구조를 돕기도 했지만, 사건이 해결되면 늘 홀연히 사라졌다. 그래서 그는 “어디에나 있었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이번 프로그램을 맡은 이큰별 피디가 그를 알게 된 것은 ‘씨돌 시절’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를 취재하면서 세상의 속도와 다르게 살아가는 그의 인생이 놀라워 방송 나간 뒤에도 가끔 찾아뵈었어요. 씨돌 아저씨와 대화를 하면 저도 숨이 트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언젠가는 이분의 인생을 한번 제대로 조명해보고 싶었다”는 그는 3년 전 수소문 끝에 그를 찾아냈다. 이후 <에스비에스 스페셜> 팀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이 피디는 씨돌의 삶을 본격적으로 파고들었다.


“개인사를 잘 이야기하지 않아 그저 민주화운동을 했고 고 이소선 여사와 잘 아는 사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는 이 피디는 이번에 취재를 하면서 알게 된 그의 삶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애초 1부로 기획한 것을 2부로 늘렸는데도 미처 방송에 담지 못한 것도 많다. 1980년대 초 요한은 제주에서 ‘사랑과 믿음의 집’을 꾸려 고아·부랑아들을 돌봤고, 1990년대 말에는 영월 동강댐 반대 운동에 앞장섰으며 2013년엔 삼척 핵발전소 반대 운동에도 참여하는 등 그의 흔적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알고 보니 방송 출연료를 비롯해 자신이 가진 돈도 전부 기부했고, 정선에서 농사를 지을 때는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 수확물을 아낌없이 보냈다. 이 피디는 “출연료를 준 저에게도 지금껏 기부 사실을 얘기하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지금은 반신마비로 요양병원 전전
감동적 선행과 가혹한 현실에 먹먹
통장 하나 없는 의인에 후원 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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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용현(오른쪽)이 정연관 상병의 가족과 만나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 화면 갈무리


언제나 그랬듯 또 어딘가에서 “하하하” 웃으며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가까스로 찾아낸 그는 요양병원에 누워 있었다. 오른쪽 몸이 마비돼 언어장애까지 앓고 있다. 시청자들이 유독 그의 삶에 가슴 먹먹해 하는 이유다. 방송에선 자세하게 다루지 않았지만 그는 민주화운동을 하던 당시 고문·폭행을 당한 후유증으로 몸 곳곳이 아팠다. 그 영향 탓인지 봉화치 마을에서 일을 하다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혼자 살다보니 뒤늦게 등산객에게 발견됐다. 이 피디는 “보호자가 없어 수술도 빨리 받지 못했고, 이후 요양원을 전전하는 과정에서도 사기를 당하는 등 야속한 상황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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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항쟁을 보도한 <타임>에 거리시위를 벌이는 요한의 모습이 담겨 있다. 화면 갈무리


용현은 슬퍼할까 봐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했지만 이 피디는 너무나도 그를 그리워하는 정연관 상병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해야 했고 15년 만에 병원 복도에서 이뤄진 기막힌 만남을 카메라에 담았다. 요한을 만난 정 상병의 어머니는 “이 사람아, 이 사람아 왜 이렇게 됐어!”라며 말을 잇지 못하는데, 그는 아이처럼 엉엉 운다. 시청자들도 함께 오열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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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돌, 용현, 요한으로 살아온 그가 방송에 출연한 뒤 출연료를 북한 어린이를 돕는 단체에 기부하며 보낸 편지. 이큰별 피디 제공


용현은 현재 기초생활수급자로 살고 있다. 돈이 없어 적극적인 재활치료를 받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 방영된 이후 시청자들의 후원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 피디는 “386세대 국회의원들도 조용히 후원을 문의하기도 했고, 영화사에서도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통장조차 없기에, 그를 아끼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2부 방송이 끝난 다음날 후원 계좌가 만들어졌다(신한은행 100 033 687880 김씨돌 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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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이렇게까지 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썼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 프로그램 갈무리.


프로그램 말미 이 피디는 시청자의 마음을 담은 질문을 던진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살았나”고. “어쩌면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졌냐”고. 용현은 종이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답했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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