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잠자리 꽁무니에 매달린 할미
장마 오면 길이 끊어져
산자락에 몸 붙이고
양팔로 벽 움켜쥐고
납작 누운 것처럼
개구리 손바닥으로
할미 집에 가는데
꼬마는
얼굴이 금세 새까맣게 타 버렸지
찰흙을 따로 살 필요가 없는 곳
계곡으로 달려가 담뿍 퍼 담으면
집도 짓고 반찬도 만들어
자그마한 흙집엔 고추잠자리를 재우지
가만히 뒤로 살금살금 다가가
날개를 잡으면
내 손안엔 잠자리
냇가에 선 여덟 살배기가
가물가물 아련한데
눈 감고 뜨면
어느덧 물 내음 사라지고
층층 계단 앞 유리문에
고추잠자리가 부딪히네
여러 눈알 박힌 눈으로
옥수수 이파리 위에서 햇빛 받은
고 녀석이 웅얼대
"문 열어, 숲으로 가자"
울 할미는 쪼그라들어 서질 못하고
하얀 침대는 숲을 먹어버렸어
할미 손잡고 뒷동산 너머
먼 길 걸어갔던
수채화처럼 아련한 기억
이 문지방을 넘으면
고추잠자리 꽁무니 같은 할미 손이
꽃밭 위의 식사
집집마다 돌아다녀
물건을 팔아
사람들이 내 보따리는 보지 않아
오늘은 텃세에 자릴 뺏겼어
한땐 공장을 다녔지
그땐,
꿈이 있었어
가슴에 책을 품고
언젠간 훨훨 나르리라 했지
그런데 웬걸
지금도 이 신세
꿈은 향내 나는 사람만 찾아오나
나는 들꽃이라 내 곁엔 차마
앉기도 거부하나
나비야, 나비야
내 젊음은 유수流水에 흘러갔다
눈 한번 떴다 감았는데
어느덧 불혹을 넘었네
어느덧 쉰을 넘었네
어느덧 홀로 세월을 넘네
굳은살 손으로 눅눅한 김밥을
덜어먹고는 다시 한번 눈 감아
내 곁에 앉아주길 간절히 기도한다
아차차
이럴 때가 아니지
짜디짠 김밥 한 줄
덜어내기 무섭게
하나라도 팔아야지
푸념과 한숨살이
어떤 이인들 자유로울까
난 들꽃
향내 없는 들꽃
이러면 안 되는데
정말 안 되는데
자꾸자꾸 눈이 무거워져
저도 모르게 감은 눈
단잠은 꽃밭 위 호랑나비를
봄바람에 실어 놓는다
꽃으로 만든 학사모를 쓴다
*성명: 소연炤燕 이승현
*프로필사진
*경력사항: 부산 출생, 낙동강문학 시부문 신인상(2009), 한국시민문학협회 등단(2009), 시민문학 편집위원 활동(2014), 대구신문 기고(시 27편, 2009~2015), 부산문학 재무차장(2023)
시가 아주 선명하니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