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국내최초 저작권관련 법원판결문
원고:김영찬/ 피고:부산주공(변호사:노무현 전대통령)
1982년 4월경이던가요?
당시 저(원고 김영찬)는 20대 후반의 나이로서 부산 인쇄디자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매출액(년 30~40억) 또한 동종계통에선 가장 많은 [데코브레인]이란 광고디자인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희 회사는 부산지역의 비락우유, 미화당백화점, 조광페인트, 연합철강, 동산유지, 세신실업, 흥아타이어, 동아타이어, 반도투자금융, 미화당백화점, 부산투자금융, 국제아피스 등등의 굵직한 부산지역 기업체 뿐만아니라 울산 현대자동차, 목포 행남자기, 의정부 삼양타이어, 양산 한미실업 등등 전국의 굵직한 회사들 수백, 수천 개를 상대로 카다록 등을 기획, 인쇄제작해왔습니다.
당시 저희는 기업체 상대로 최하 몇 백에서 몇 천, 몇 억에 이르도록 그야말로 저희가 부르는게 납품금액이었고, 동종 디자인회사들이 견적 가격을 아무리 낮춰 저희 견적의 절반 이하 가격을 제시해도 결국 저희에게 낙찰되어 결코 저희와는 경쟁상대가 되질 않았습니다.
당시 저희는 부산 사상구 사상공단에 위치한 부산주공(연합철강 계열사)의 카다록을 기획하여 시안과 견적을 제출한 상태에서 담당자의 요구에 의해 카다록에 사용할 사진슬라이드를 제작하는 등 준비작업을 진행했으나, 당담자가 회사를 그만두는 바람에 중단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 여 뒤 우연히 모 기업체 사장실에서 눈에 익은 예의 부산주공 카다록을 발견하였으며, 공교롭게도 그 카다록 표지는 저희가 기획한 시안대로 그리고 저희가 촬영한 사진을 이용하여 제작한 것입니다.
물론 부산주공 측에 과정을 설명하고 비용을 청구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청구소송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표지에 사용한 슬라이드(부산주공 심볼마크와 지구 입체모형을 이용하여 이미지촬영했다)가 저희가 제작한 것이란 겁니다.
그런데 당시엔 그저 한 컷의 4×5" 슬라이드촬영비 외엔 저작권이란 것을 따로 인정하지 않는 추세였습니다. 영화배우 사진도 무단으로 복제해 인쇄용도로 사용해도 아무런 법적 제재도 받지 않았으니 초상권이란게 있을리 없었고,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복제해 인쇄용도로 사용해도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는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2명의 변호사를 고용하여 재판에 임했으며, 상대 부산주공은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알렸던 노무현(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 변호사를 선임했습니다. 당시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없을 때라 저작권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해 부산지역 신라대학교 디자인과 교수 엄기완, 부산여대 교수 변철만 등등을 원고측 증인으로 불렀어도 판사는 저작권에 대한 판례가 없다 하여 판결 보다는 합의를 종용했습니다. 그래서 노무현 변호사와 수차례 만나 그 분의 현명한 조정으로 합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1986년 2월 9일, 아래와 같이 사진 1컷(이미지 슬라이드 1컷) 제작료로 500만원의 청구비용 중 220만원을 받아낸 셈입니다. 아마 당시 사진 1컷 촬영비로 220만원 받은 것은 한국 내에서는 최고의 금액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럼 아래 판결문의 전문을 읽어보시죠?
저도 잊고 있다가 얼마전 우연히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모 블로그에서 발견된 판결입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apajang&logNo=120001008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