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문 봄날에
높이보다 얼마나 잘 엉키느냐가 중요한 삶에서
가시덤불처럼 엉키고 잘 익은 알 하나로 남는 일
삶의 덩굴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구들목에서 호박씨가 마르는 겨울 내내
만지작 만지작 우리의 생각도 말릴 일이다.
어쩌다 우리의 꿈밭을 엿보는 이에겐
푸른 얼굴 내밀어 웃어도 보지만
이파리 무성한 속에 몇 덩이 꿈을 둥글리는 일
가을까지 실하게 영그는 일 잊지 않는다
봄에서 여름까지 가을까지 뻗어보는
밤낮으로 덩쿨 덩쿨 엉켜보는
엉키고 설키는 것이 삶이라 믿으며
양손에 애호박 몇 개 저울의 추처럼 달고
비틀거리지 않는 꿈을 얽어보는 거야
저문 봄날 울밑에 호박씨 하나 심는다
호박꽃도 꽃이냐고 사람들이 웃는 꽃
반짝 반짝 담 높이 얹어 두고 넝쿨이 가는 길
담 따라 햇살 따라 우리도 가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