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예외 없이 97주기의 3.1절 행사를 국가 차원에서 성대히 치뤘다. 하지만, 일제로 인해 우리 조선의 꽃다운 처녀들이 강제로 징용되어 머나먼 이국에서 성을 노략 당하고 이후로도 사회의 무관심 속에 처절한 세월을 감내해 온 일제 위안부의 실상을 통감하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녀들은 일본군에 의해 처녀성을 철저히 유린 당하고 짐승보다 못한 대접과 모멸에도 항거하지 못한 채 한 떨기 이름 없는 꽃이 되어 쓸쓸히 산화하였거니와 아직 생존하였다 한들 스스로 저주 받은 인생이라 여기며 아득한 절망의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일본은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으로 전선이 점차 확대되고 전쟁이 장기화되자 군의 사기진작을 위해 1932년 ‘군위안부’제도를 만들었다.
그때부터 조선의 젊은 여성들을 닥치는대로 끌어모아 전선에 투입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강제로 끌려간 여성들은 축사보다 못한 열악한 위안소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잠도 못 잤다. 그리고 자신의 차례가 되길 기다리며 길게 줄을 선 일본군을 상대로 밤낮 없이 성을 혹사 당해야 했다.
당시 무엇보다 그녀들을 가장 두려움에 떨게 했던 것은 중병에 걸려 운신을 못한다거나 임신을 하여 배가 남산만하게 불러오는 것이었다. 일본군은 그런 여성들을 위안부로서의 수명이 다 됐다는 이유로 총검으로 난도질하는가 하면 가차 없이 죽이기까지 하였다.
위안부 문제를 과거 전쟁의 회오리 속에 불궈진 일개 전쟁사로 치부한다 해도 작금 일본의 위안부 부정은 역사의 왜곡은 물론 더 나아가 인간의 존엄성마저 완강히 부정하고 나선 것과 다를 바 없는 그야말로 후안무치한 짓이다. 따라서 일본은 전 세계를 상대로 철면피한 짓을 벌이려 할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과거 잘못을 인정하고 빚을 졌으면 그 빚을 갚아야 할 것이다.
무궁화(無窮花)는 우리 민족과 5천년이란 긴 세월을 함께 해왔고, 우리 국민들에 의해 나라 꽃으로 지정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 무궁화는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꽃이라 하여 온갖 핍박을 받았으며, 왜곡되기도 했다. 하지만 독립투사들에 의해 우리 민족의 정신적 상징이 되어 우리 민족이 겪어온 역경을 함께 이겨내 다시금 나라꽃으로 자리잡고 지금껏 우리 곁을 지켜오고 있다.
이 작품은 3.1절 97주기를 맞아 과거 일제 만행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아직까지 고통 받고 있을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무궁화꽃이 활짝 피어나듯 과거의 굴레를 벗고 행복을 되찾길 바라는 마음을 형상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