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환 시인의 <산과 들>을 읽고
버석해진 몸이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눈을 돌린다.
하루의 끝이 다가올 수록 몸이 퍼석해지는 느낌이 든다. 매일 매일이 평화롭고 또는 단조롭게 흘러간다. 해가 오르면 피곤한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시계를 보며 조급해지는 마음을 추슬러 학교로, 사회로 나간다. 날마다 조금씩 다른 몸은 가볍기도 유난히 무겁기도 하다. 네모난 건물들과 해를 반사시켜 반짝이는 유리, 햇빛만큼이나 밝은 전등 밑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면 푸릇한 무언가가 그리워진다. 그런 날에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이리저리 살피고 기어코 어떤 것들을 찾아낸다. 길에서 나른하게 늘어져 있는 길 고양이들, 아스팔트를 뚫고 자라 꽃봉오리를 피워낸 이름 모를 풀, 계절마다 다른 색감을 보여주는 하늘. 이런 물체들을 눈에 담으면서 계속 걷다 보면 그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빠르게 달려가는 차들, 각기 다른 목적지를 향해 걷는 타인들, 건물 안에서 끝없이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 바람에 따라 가지를 흔드는 나무를 바라본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 감정을 나누기도 그 감정에 상처받기도 하는 날에는 잔잔한 산과 울렁이는 바다가 그리워진다. 시간을 들여 그곳들로 향하기엔 당장 내일의 피곤함이 덮쳐오기에 나는 저 흔들리는 나무를 쳐다본다.
작은 핸드폰에서 울려대는 여러 소식들, 부딪히는 사람들, 모든 것들에 무감해져 멈춰 선 나에게 짭짤한 제 모습을 바람에 태워보내는 바다를 느낀다. 굳어지고 파삭해지는 내 마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내보일 수 없을 때가 있다. 스스로를 챙겨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될 때 나는 자연 안으로 들어간다. 푸르고 맑은 향을 뿜는 숲, 큰 몸집으로 잔잔한 소리를 내는 바다. 이들 속에서 나는 한참이나 숨을 죽이고 그 풍경들을 마주한다. 이렇게 바싹 말라버린 내가 완전히 부서지지 않도록 자연은 끊임없이 물을 뿌린다.
<산과 들>에서처럼 묵연한 생명력들은 내게 가벼워진 마음을 선사한다. 앞서 서술했던 것처럼 무던한 하루를 보내다가도 그 하루들이 답답해져 버리는 순간이 온다. 이럴 땐 친구, 동료, 가족, 애인들에게서 힘을 얻는다. 하지만 그 감정들을 혼자서 흘려보내야 한다고 판단이 서면 걸음을 돌려 숲이 있는 곳으로 또는 바다가 있는 곳으로 발을 굴린다. 어떤 말을 전하지는 않지만 그저 존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자연을 "행복을 주는 곳"이라 표현한 이유를 온전히 공감한다. 감정이 쏟아져 충만함을 느끼는 상태 또한 행복이라 할 수 있지만 지나가는 삶이 마르지 않게 채워진 상태도 행복이니까.
발걸음을 돌리자. 자연 속에서 마르지 않는 마음을 위해서.